뭐를 쉽게 질리는 사람

요새 ㄹㅈㄷ로 일하기가 싫다. 봄이어서 자꾸 딴생각이 드는 걸수도 있는데 너무 쳇바퀴 도는 삶이라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근데 당연하다. 한 회사의 한 브랜드에서 같은 업무만 매주 하고 있다. 삼일절에는 하루 종일 누워 있다 밤에 열한 시간을 넘게 잤다. 그런데도 출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예전부터 뭐를 잘 질려했다. 게임이 재밌다고 해서 깔아보면 보통 3일 안에 질려서 접는다. 이런저런 취미도 해보겠다고 재료를 잔뜩 사 두고, 몇 달 깔짝이다가 관둔다. 재료 다 팔아버리고 몇 년 뒤에 또 꽂혀서 또 산다. 이 짓을 좀 반복하다 보니 뭔가 데이터가 쌓여서 이건 금방 접을 것 같으니 초기투자를 조금만 하자 하는 생각까지는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마구 찾아보고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는 행위는 언제 해도 짜릿하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 곳에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나에게 안 맞는 것 같다. 아니 뭐 일이야 한 가지를 할 수는 있는데 오히려 다양한 브랜드를 하던 때가 훨씬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다. 아니면 하나의 브랜드에서 다양한 일을 한다든지? 그런데 그렇게 치면 지금 브랜드가 그렇게까지 애정을 쏟을 만큼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다. 내가 진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브랜드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

그리고 또 요새 드는 생각은… 역시 단기간의 매출만 봐서는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브랜딩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브랜딩이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지만서도 그래도 고객에게 보여지는 이미지가 뚜렷하게 있어야 제품도 브랜드도 기억에 남을 것인데… 우리 브랜드는 그런 것을 되게 후순위로 생각하고 있다. 그냥 얼레벌레 (생략) 팔기만 하는 곳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제품의 품질이 좋긴 하다는 것 같다.

암튼 오늘 팀원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업계의 특수성 때문에 나 같은 일을 하는 팀원이 필요하긴 한데, 그렇다고 직무상 아주 만족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쪽에 뜻이 없으면 머리만 더 아플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퇴사를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나가려고 한다.

내일은 아마 면접을 보고.. 그녀의 퇴사를 알리고… 그리고 내 퇴사(예정)도 알릴 것이다. 왜 퇴사하냐하면… 번아웃이 왔다고 해야지… 매주 같은 일을 반복하는데 슬슬 그에 대한 성취감에도 무뎌지고 있고 (당연함 보상이 없음) 그에 따라 브랜드가 발전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있고 내 자신도 물건 파는 사람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해야겠다. 혹시나 어떠한 특별대우를 해 준다고 하면 늘 의사결정에서 모든 팀에 적용할 수 있느냐부터 고려했으면서 이제 와서 이러는 거 되게 속 보인다고 해야지… 근데 진짜 회사에 정이 떨어지긴 했나 보다… 해줘도싫어 안해줘도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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